우리는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교육
경쟁과 집단괴롭힘이 없는 교육
시험지옥이 없는 교육
강압적인 학교가 없는 교육
사교육이 없는 교육
신기루 같은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지 않는 교육
황금 같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교육
타고난 본성을 스스로 발현하는 교육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교육
루소는 이미 수 세기 전에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치며 아이들의 타고난 본성을 존중하고 자연적 발달에 따르는 자기교육을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이러한 지혜를 무시하고 한 세기나 낡은 교육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전히 권위주의와 위계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다. 개인의 타고난 본성을 무시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순종적인 시민 만들기에
열중하는 비인간적인 교육 시스템은 아직도 작동 중이다.
개인의 자유가 꽃을 피우며, 인터넷은 더 많은 개인의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시대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다.
디지털 기술 기반의 새로운 시대는 직관, 열정, 자기교육 등 내적 이해와 연결되는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한다.
이제 강제 교육의 임무는 끝났다. 가르침이 아닌 진짜 배움을 시작할 때가 왔다.
아이들이 전인으로 성장하여 독특한 재능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교육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때가 되었다.
21세기 언스쿨링의 시대가 열렸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언스쿨링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교육을 스스로 결정하여 스스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교육이다. 혼돈의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기 학습, 자기 결정, 자기 책임을 보장하는 교육이다.
아이들이 좁은 학교 울타리에서 “세상의 놀이터”로 뛰쳐나가 호기심, 창의성, 열정, 배움에 대한 사랑을 마음껏 펼치는 자기 창조 교육이다.
언스쿨링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기반에서 출발한다.
○ 아이들은 배움의 본성을 타고난 존재다.
○ 아이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과 능력, 자기 나름의 학습 시간표를 가지고 태어난다.
○ 아이들의 시간표에 따라 그들이 즐기는 모든 활동을 존중하게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전인으로 발달한다.
○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용기, 자신감, 독립심, 참을성, 이해력을 스스로 깨우쳐가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 성인들의 성급한 가르침은 아이들이 타고난 배움의 능력과 열정의 파괴자다.
○ 아이들은 친절한 간섭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학습 본성과 열정에 불을 댕기는 자유, 조력,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이의 성장은 정원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아무리 정원을 자세히 살펴도 그 특정한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계절이 변해가면서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수많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먹고, 달리고, 오르고, 놀고, 재잘거리면서 삶을 배우고, 그렇게 함으로써 배움을 추구한다.
아이들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의 필연성을 믿는다.
그들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성인들을 필요로 한다.”(엘 스티븐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직감이 드는가?
어디선가 아이가 스스로 배우도록 내버려 두라는 속삭임이 들리는가?
그럼 그렇게 하라!
우리 안에 조상의 지혜가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언스쿨링을 시도하라.
1년 아니 6개월간 장기 휴가를 떠나온 것처럼 살아라.
걱정은 접어두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부대끼며 그냥 살아라.
아이가 진흙 웅덩이에서 놀고 싶다면 그대로 하라. 갈아입을 옷과 수건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두려운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뭔가를 하는 것이다.
무위자연!
아이를 무조건 믿어라.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
이상한 사람도 괜찮다.
외부 시선에서 벗어나라.
루소는 18세기에 자기교육을 말했다.
우리는 21세기에 완전한 자기교육의 길을 간다.
우리는 더 진화한 조건을 갖춘 21세기 루소다.
언스쿨링은 그럴 가치가 충분한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