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쿨링은 무엇을 배우는가

 

1. 교육과정의 개념

2. 언스쿨링은 계획한 교육과정이 없다

3. 아이들이 교육과정이다

4. 놀이가 교육과정이다

5. 온 세계가 교육과정이다

 6. CURRICULUM?





 

교육과정 개념

 

교육과정은 국가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된 교육내용과 학습활동을 체계적으로 편성·조직한 계획이다. 학교 교육이 판치는 사회에서 교육과정의 신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교육과정에는 반드시 그것을 방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교육과정은 아이들이 무엇을, 언제, 어떻게 배울지 선택할 능력이 없으며 오직 교사만이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가정한다. 언스쿨링은 성인들이 규정한 교육과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지를 사전에 계획한 일정이 없다면 배움은 직접적인 삶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다양한 시간에 다양한 개념과 주제에 매료되어 필요할 때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런 영역을 더 깊이 파헤친다. 아이들이 특정 주제나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게 되면 매우 성공적인 학습을 일구어내는 점을 강조한다.

 

언스쿨링은 계획한 교육과정이 없다

 

언스쿨링에는 미리 계획하여 편성한 전통적인 교육과정이 없다. 언스쿨링은 형식적인 교육과정을 거의 또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아이의 관심이라면 무엇이든지 배우도록 안내하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학습은 사전에 계획해야 하고 특정 성취기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교육과정의 개념을 거부한다. 학교 교육과 마찬가지로 교육과정은 구시대의 인공물이다.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대중을 세뇌하여 붕어빵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충실히 기능했다.

 

언스쿨링은 아이가 무슨 교과를 언제 배워야 할지를 결정하고 재촉, 회유, 벌 등으로 통제하는 교육과정을 거부한다. 언스쿨링 학습은 인간의 본성이며 아이는 타고난 학습자라는 교육철학에 기반한다. 아이는 흥미롭고 풍성한 학습환경에서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되면 타고난 본성에 따라 저절로 배운다. 학습은 아이의 내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알아야 하거나 수행할 뭔가를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필요가 없다.

 

언스쿨링에 교육과정이 없다는 의미는 절대로 형식적 교육과정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교육과정으로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떤 아이들은 교과서나 연습문제집처럼 구조화된 교육과정을 좋아한다. 언스쿨링은 아이가 좋아서 선택하면 형식적 교육과정도 기꺼이 허용한다. 교육과정과 수업 선택이 개인의 특별한 관심이나 목적에 부합하게 되면 그것은 비강제적인 것이 된다. 아이들이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또한 그냥 무시한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교육과정은 유용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교과서나 연습문제집을 좋아한다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교과서 등은 주변에 있는 다른 자료처럼 언제,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아이들이 선택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교육과정이 문제가 아니라 성인이 강요하는 교육과정이 문제다!


 

아이들이 교육과정이다.

 

뷔페식당을 상상해보자. 사람들이 뷔페 음식을 즐기는 것은 자기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 때문이다. 

한식, 양식, 일식 등 산해진미가 넘쳐도 사람들은 오직 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찾는다. 

학교 교육과정은 수많은 음식의 종류 중 극히 제한적인 몇 가지 음식만 제시한다. 

만일 내가 싫어하는 메뉴뿐인 식당이라면 결코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싫은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만큼 참기 어려운 고문도 없다. 학교는 아이들이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는 메뉴를 강요한다. 

아이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식당의 주인은 고객인 나다!

 

언스쿨링은 아이가 정해진 교과목이나 일과표 없이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에 아이가 교육과정을 통제한다. 

아이가 학습의 주인이며 아이가 자기 학습을 선택하고 책임지고 주도한다.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울지 아이가 스스로 결정한다. 

누군가가 아이가 배운 지식을 평가하는 일도 없으며 학습의 종결도 아이가 결정한다. 아이들은 자기 교육과정에 따른다. 

소위 맞춤식 교육과정이다. 아이들의 얼굴 모습이 각각 다르듯 모든 아이는 각기 독특한 성격, 취향, 재능, 학습방식, 신체리듬을 가지고 있다. 

나만의 독특한 호기심, 관심, 재능의 길을 열어주는 나와 천생연분인 개인화 교육과정이 곧 언스쿨링 교육과정이다. 언스쿨링에 유일한 교육과정은 없다.

 

배움은 아이가 주도할 때 자연적이고 유의미하게 된다. 아이가 싫어하는 것은 가르칠 수 없고 가르쳐봐야 소용없다. 

금세 잊기 마련이다. 말을 강가로 데려가도 물을 마시는 주체는 주인이 아닌 말이다. 

아이는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것을 실제 세계에서 배우게 될 때 가장 잘 배운다. 

국가가 아이의 독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아이를 위해서 똑같이 계획한 교육과정에 따라 배움을 강요하는 일은 싫어하는 음식을 앞에 놓고 

어찌할지 몰라 울상짓는 불쌍한 사람과 다름없다. 이는 진정한 배움이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고 재미있게 놀고 즐기는 것이면 모두 교육과정이다.

 



놀이가 교육과정이다.

 

언스쿨링은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이다. 학습은 삶과 한 덩어리가 되어 통합적으로 일어난다. 

양자는 결코 분리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삶이 학습이고 학습이 삶이다. 아이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교육과정이다. 

아이의 일상은 대부분 놀이가 차지하기 때문에 놀이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 그 자체다. 

놀이는 아이에게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이며 자신의 삶이다. 놀며 생각하며 즐겁게 배웠던 경험이 곧 교육과정이다.

 

실제로 유치원의 교육과정이 놀이 중심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고 오르고 내리고 씨름하면서 근육을 조절하고 기술을 발달시킨다. 

친구와 놀면서 자기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표현하며 자신감을 얻는다. 산, 들, 강을 누비면서 호기심을 해소하고 탐구하는 태도를 기른다.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만들면서 관찰과 표현력을 증진한다. 이처럼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신체와 운동 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 경험, 자연 탐구 등을 훗날 성인이 되는 데 필수적인 것들이 넘친다. 비록 비가시적이지만 아이들은 일상의 놀이 속에서 필요한 교육내용을 부지런히 연습하며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한다.

 

현재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에서는 인공지능, 로봇 기술, 생명공학 등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기존 직업의 소멸 속도가 현저히 빨라질 것이다. 현시점에서 직업 세계에 대한 과학기술의 영향력을 정확히 예측하고 이를 학교 교육에 반영하기는 불가능하다.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직업 세계는 계속 변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놀이가 21세기 핵심 역량을 연마하는 궁극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무작정 놀기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4차 혁명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고 주어진 지식을 암기하는 능력은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그런 거라면 AI나 구글이 더 잘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인간관계 관리, 사회적 기술과 같이 더 복잡하고 인간적인 능력들이다. 이는 AI나 로봇이 하지 못하는 능력의 영역이며 놀이 교육과정을 통해서 발달하는 공통점이 있다.

 

온 세계가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이 없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언스쿨링을 하게 되면 우리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과정보다 더 크고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된다. 

하지만 교육과정이 없는 교육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세상에는 우리 아이가 배워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무한하다는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무엇을 어디서 시작할지 막막할 뿐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중압감과 책임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내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우리를 패닉상태로 몰고 간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것은 많다. 온 세계가 교육과정이다. 우리가 배움은 오직 교실에 일어난다는 교수 가설에서 해방된다면 

주변의 모든 곳에서 배움을 찾아 배울 수 있다. 장갑처럼 내 아이에게 꼭 맞는 맞춤식 교육과정을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선택하여 추구하게 될 직업과 취미는 아이들의 관심과 연결되어 학교 교육과정보다 아이들의 미래에 더 많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는 신념은 우리 사회의 철칙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휘틀리는 이런 신념을 “교수 가설(instruction assumption)”이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이 배우려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은 우리 문화 속에 너무 깊이 배어서 다른 방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중심의 학습은 선형적이다. 선형적이라는 용어는 직선에서 왔다. 선처럼 길게 일렬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설명하거나 일의 진행 순서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교과는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나아가고 각 교과는 경계선에 따라 분리되어 

단절되고 서로 관련이 없다. 학습은 이런 교과를 매개로 직선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삶 중심의 학습인 언스쿨링 학습은 비선형적이며 마치 거미줄처럼 보인다. 

아이의 나이나 교과와 상관없이 각 아이의 독특한 호기심을 추구하며 지식의 조각을 서로 엮어서 연결한다.

 

예를 들어 야구에 관심에 꽂힌 아이의 학습은 다음과 같이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수학: 타격과 수비의 통계분석, 지리: 아이가 좋아하는 팀의 근거지 조사, 역사와 문화: 팀과 게임의 변천사에 

관한 연구, 읽기: 웹 사이트와 선수의 경력 탐독, 체육: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 전력 질주에 도전, 물리학: 지속적인 홈런 연습, 

팀워크: 현장에서 함께 응원, 페어플레이: 오르락거리는 승패의 결과 수용 등.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인간의 창의성은 인간을 기계와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특성이 될 것이다. 

미래의 적합성이 의심되는 특정 학습 내용, 편협한 교육과정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되면, 

아이들의 창의성을 허약하게 만들어 개성을 질식시키게 될 것이다. 상상력의 시대에 AI가 해낼 수 없는 창의적 지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이들을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가, 기업가, 독창적인 사상가들로 기르기 위해서는 맞춤식 교육과정, 개인화 교육과정, 언스쿨링 교육과정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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